본문내용 바로가기

새로운경기 공정한세상
검색
전체메뉴 열기
전체메뉴 닫기



전당언론보도 등록자, 등록일시
등록자 관리자 등록일시 2017-10-20 00:00:00
사진자료

30년대 조선가희(朝鮮歌姬)를 만나다
목포의 눈물, 오빠는 풍각쟁이, 30년대를 주름잡은 솔로 여가수들을 무대 위로 소환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진행으로 즐기는 30년대 그때 그 시절 이야기

가요 '목포의 눈물', '오빠는 풍각쟁이', 영화 <해어화>, <아가씨>,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1930년대 문화예술을 소환하고 있다는 점. 최근 들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며 1930년대가 하나의 문화예술 트렌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국악당(사장 정재훈․이하 경기도국악당)은 28일, 30년대를 주름잡았던 5인의 매혹적인 여가수들을 조명하는 공연 <윤중강과 함께하는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이하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를 선보인다.

서양문화가 밀려들어오던 1930년대는 태평양 전쟁으로 예술 활동이 억압받았던 1940년대와 달리 전통 음악과 서양음악이 만나 왕성한 활동이 이루어졌던 문화예술 부흥기였다. 조선시대를 지나며 무르익은 국악과 신민요, 트로트,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했던 30년대의 음악은 오늘날 대중음악의 시발점으로 일컬어진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는 이처럼 화려했던 30년대를 무대삼아 전성기를 누린 5인의 조선가희(朝鮮歌姬) 이난영, 박향림, 왕수복, 선우일선, 이화자의 삶과 음악을 조명한다. 특히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사랑받고 있다.

당대 최고의 음반사 "오케 레코드"의 전속 가수 이난영(1916~1946)은 '목포의 눈물'로 가왕(歌王)이라 불릴 정도의 높은 인기를 누렸다. 오카 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특한 목소리와 탁월한 기교를 가졌던 박향림(1921~1946)은 동시대 여가수들 중 가장 도시적이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를 불렀다고 평가받는다. '오빠는 풍각쟁이', '전화 일기' 등의 명곡을 남겼으나 산후병으로 24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왕수복(1917~2003)은 최초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여 1935년 잡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이난영, 선우일선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인기스타였다.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1918~1990)은 왕수복과 함께 평양기생학교 출신 가수로 쌍벽을 이루는 인기를 얻었다. 하늘나라의 옥퉁소 소리처럼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라는 평을 받았다. 이화자(1918~1950)는 1938년 오케 레코드사에서 거액을 받고 전속 가수가 되어 '어머니 전상서'로 십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서로 치열한 라이벌이자 때로는 동반자였던 이 여가수들은 코믹송에서 재즈송까지 두루 섭렵하며 전통과 현대의 가교 역할을 했다.

<트로트에서 아리랑까지>는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진행으로 30년대의 영상과 복각음반, 라이브 재현무대를 선보이며 그 시절의 삶과 음악을 훑어 내린다. 공중파 라디오프로그램 <흥겨운 마당>의 진행자이자 '국악평론가 1호' 윤중강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1930년대 음악과 역사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줄 예정이다. 하지아(노래), 김민지(노래), 미미(아코디언), 노경진(기타)은 조선가희(朝鮮歌姬) 5인의 음악을 재현하여 관객들을 30년대로 인도한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단군 이래 지금까지 1930년대 사람들 만큼 도제나 집단에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었으며, 그들은 사고(思考)도 자유로웠다"며 "시대-노래-사람이 어우러진 공연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프로그램(레퍼토리)
- 조선악극단 영상
: 일본영화 '사려깊은 부인'에서 조선악극단 공연장면
- 이난영
: 목포의 눈물, 다방의 푸른꿈
- 박향림
: 오빠는 풍각쟁이, 연지찍고 곤지찍고
- 왕수복
: 왕수복의 아리랑, 신방아타령, 고도의 정한
- 선우일선
: 꽃을 잡고, 바람이 났네, 조선팔경가(대한팔경)
- 이화자
: 화류춘몽, 가거라 초립동
- 청춘계급 영상
: 영화 '라듸오데이즈'에 삽입된 김해송의 '청춘계급'
공연개요
- 일시
: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5시
- 장소
: 경기도국악당 흥겨운극장
- 티켓가격
: 전석 3만원
- 주최/주관
: 경기도문화의전당 국악당
- 관람연령
: 초등학생 이상
- 문의처
: 1544-2344
출연자프로필
- 사회 : 윤중강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 음악연구과 졸업
  • 現 KBS Classic FM '흥겨운 한마당' 진행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평론가, 연출가, 방송인
- 노래 : 이은혜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 석사 졸업
  •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 국립부산국악원 성악단 단원
- 노래 : 김민지
  •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음악극과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 석사 수료
  •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
- 아코디언 : 미미
  •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실용음악과 졸업
  •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장려상 수상
  • 1집 앨범 Mimi on travel 및 싱글 앨범
  • 다수 연극, 뮤지컬, 드라마 작·편곡
  • 다수 공연, 영화, CF 공연 및 세션
- 기타 : 노경진
  • 목원대학교 재즈학부 수석 졸업
  • 동덕여자대학교 대학원 실용음악과 졸업
  • 다수 공연, 앨범 세션
  • 現 빅스타 실용음악학원 기타 강사
    평택 부락복지센터 기타레슨 프로그램 강사
조선가희 5인 소개
목포의 눈물, 이난영(1916~1946)

목포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자퇴했다. 제주도에서 어머니와 생활하던 중 주인집 아이를 돌보며 흥얼거린 노래를 듣고, 극단을 경영하던 집주인의 추천을 받아 순회공연 중이던 삼천가극단의 막간 가수로 서게 된다. 이난영을 알아본 작사가의 추천으로 오케 레코드 전속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35년 문일석의 가사에 손목인이 곡을 붙인 '목포의 눈물'로 가왕(歌王)이라 불릴 정도의 높은 인기를 얻게 된다. 1936년에는 오카 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고, 대중가요 작곡가 겸 가수로 활동하던 김해송과 혼인하였다.

독특한 목소리 탁월한 기교, 박향림(1921~1946)

원산부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박향림은 오케레코드의 연주단을 찾아가 노래를 불렀으나 사장 이철의 반대로 발탁되지 못했다는 후문. 결국 상경하여 오케레코드의 경쟁사인 태평레코드를 찾아가 가수로 데뷔한다. 이후 콜럼비아레코드에 영입되어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는데, 대표적인 노래로 '오빠는 풍각쟁이', 김해송과의 듀엣송 '전화일기'가 있다. 동시대 여가수들 중 가장 도시적이고 발랄한 분위기의 노래를 불렀으며 야무지고 정확한 가창으로 호평을 받았다. 많은 인기를 얻은 박향림은 결국 초반 자신을 거절했던 오케레코드에 스카우트되어 히트곡을 계속 발표한다. 그러나 1946년 출산 직후 무대에 올랐다가 산후병이 발병하여 24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한다.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 왕수복(1917~2003)

편모 슬하에서 자라난 왕수복은 명륜여자공립보통학교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한다. 기생이 되어 특히 노래에 재능을 보이던 그녀는 10대 중반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최초 기생 출신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한다. 이듬해 데뷔한 기생 출신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인기스타로 성장하여 1935년 잡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다. 그녀는 정상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않고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음악을 공부하여 메조소프라노가수로 귀환한다. 이후 조선 민요를 성악 창법으로 불러 화제를 모은다. 소설가 이효석과 경제학자 김광진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왕수복은 이효석의 임종을 지키고, 훗날 시인 노천명의 연인이었던 김광진과 결혼하여 함께 월북한다.

하늘나라의 옥퉁소 소리, 선우일선(1918~1990)

홀어머니와 어렵게 자라던 선우일선은 평양기생학교에 입학한 후, 소리를 잘 하는 기생으로 유명해진다. 1933년 포리돌레코드 문예부장 왕평에게 발탁되며 '꽃을 잡고'라는 곡으로 데뷔한다. 주로 신민요를 불렀던 선우일선은 왕수복과 함께 평양기생학교 출신 가수로 쌍벽을 이루는 인기를 얻는다. 신민요의 고전으로 불리는 '조선팔경가'를 비롯하여 '압록강 뱃노래', '바람이 났네'와 같은 히트곡을 발표한다. 작사가 및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이부풍은 선우일선의 소리를 "하늘나라에서 옥퉁소 소리를 듣는 듯한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라고 회고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평양에 머물며 말년까지 민요 연구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다.

십만 장 판매의 폭발적 인기, 이화자(1918~1950)

인천 출생. 작곡가 김용환에게 발탁되어 가수로 데뷔한다. 당시 인기 절정이던 왕수복, 선우일선을 능가하는 민요가수로 주목을 끌었다. 1938년 오케레코드사에서 거액을 받고 전속가수가 되어 김해송 작곡인 '화류춘몽', 박시춘 작곡의 '목단강 편지' 등으로 큰 인기를 얻는다. 특히 '어머님 전상서'는 십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며 이화자를 민요의 여왕 자리에 앉힌다. 광복 이후 지방순회공연단체의 일원으로 객지생활을 하다가 일가친척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첨부파일 트로트에서아리랑까지.hwp [0건 다운로드]
트로트에서아리랑까지포스터.jpg [0건 다운로드]
1.이난영_1.jpg [0건 다운로드]
2.박향림_1.jpg [0건 다운로드]
3.왕수복_2.jpg [0건 다운로드]
4.선우일선_1.jpg [0건 다운로드]
5.이화자_5.jpg [0건 다운로드]
노경진_기타.JPG [0건 다운로드]
미미_아코디언.jpg [0건 다운로드]
윤중강_1.JPG [0건 다운로드]
이은혜.jpg [0건 다운로드]
  • 게시글 화면 캡쳐

만족도 조사

별점주기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