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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무용단 <본>]경기도무용단의 새로운 도전   추천 3
작성자 박형석 등록일 2021-12-21 조회수 276
지난 12월 18일(토) 경기도무용단의 <본>을 관람했다. 이 작품은 한국무용을 주로 하고 있는 경기도무용단이 한국무용이 아닌 다른 분야의 안무가들에게 위촉한 작품이라는 데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했다. 사실 경기도무용단도 좋게 말하면 그동안 전통을 굳건히 지켜오는 춤을 주로 추었을 뿐, 시대가 요구하는 춤에 대해서는 그리 열려 있는 자세로 접근하지 못했었는데, 지난 6월의 <디 오브젝트>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번 작품에서도 새로운 모습에 도전하고 있어 점차 시대의 흐름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1부에서 공연된 '제'는 신윤복의 <무녀 신무(巫女 神舞)>를 모티프로, 그리고 2부에서 공연된 '흥'은 김홍도의 <무동(舞童)>을 모티프로 구상한 것이라고 한다.

신윤복의 <무녀 신무>를 보면 오른쪽 상단에서 부채를 펼쳐든 무녀가 왼쪽 하단에 앉은 악공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고, 그 사이로 굿을 청한 아낙네들이 간절하게 무안가를 기원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특이하게 인물의 구도를 비스듬하게 사선으로 배치함으로써 운동감이 느껴지고 뭔가 일어날 듯한 불안정한 느낌이 드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림에서 느껴지는 이런 모습을 그대로 잘 살려준 것 같았다. 안무가가 현대무용을 전공한 분이라 그런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한국무용에 비해 상당히 운동감이 느껴졌다. 무대 위의 샤막이 올라간 첫 부분에서 무용수들이 마치 신윤복의 그림 속에서 기원을 드리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처럼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비추는 정사각형의 조명이 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주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곤 마치 무당에 빙의가 된 듯 일제히 같은 동작을 하던 무용수들이 서서히 열을 나누어, 행을 나누어, 또는 사선으로 나누어 편을 갈라 동작을 하더니 방석 형태의 조명이 꺼지고 나서는 각자 다른 형태의 동작을 보이는 과정이 신선했다. 음악에 더해진 고영열의 소리는 악공들의 반주에 맞춰 신을 부르는 무당의 간절한 외침이었으며, 이어 소리가 구음으로 바뀌면서는 엑스터시에 이른 무당의 외마디에 대응해 더욱 격렬해진 무용수들의 소망을 기원하는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꽃가루가 쏟아지는 장면은 그러한 기원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환희를 나타낸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는 우선 미장센이 환상적이었다. 흰색의 무대 바닥 위에 검은색 무용복을 입은 배우들의 색감 대비가 강렬했고, 스크린에 나타나는 붓글씨의 획과 고영열의 구음, 한 명, 두 명, 그리고 여러 명이 합쳐지고 나눠지면서 보여주는 다양한 형태의 춤들이 어우러져서 멋진 무대를 만들어냈다. 후반부에 뿌려진 꽃가루는 조명에 비춰 반짝이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무용수들의 동작이 한국무용에 바탕을 둔 상태에서 현대무용의 춤선과 어우러져서 한국무용에서 볼 수 없는 역동적인 모습과 현대무용에서 볼 수 없는 우아한 동작이 모두 나타난 그런 춤이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1부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려가길래 커튼콜이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객석에 불이 켜져서 좀 아쉬웠다. 1부 공연만이라도 따로 커튼콜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인터미션이 끝나고는 2부 공연 '흥'이 시작되었다. '흥'에서는 뮤지컬 배우인 홍지민이 나온다길래 어떤 컨셉으로 나올까, 말로만 듣던 고블린파티의 연출은 어떨 것인가 기대가 됐다. 솔직히 공연 전에는 1부 '제'에 대한 기대는 거의 없었으나 '제'의 무대가 기대 이상으로 좋아 '흥'에 대한 기대치는 더 많이 올라갔다. 그러나, '흥'은 내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무대 막이 오르니 인터미션 때 치워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꽃가루가 그대로 무대에 남아 있어서 뭐지? 하는 순간, 홍지민이 빗자루를 들고 무대로 나와 자신도 고영열처럼 멋지게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빗자루질만 하라고 시킨다며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건 또 뭐지? 한국무용에 뮤지컬적인 요소를 도입하겠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정작 무용은 뒤로 물러나고 홍지민의 역할이 너무 앞으로 나오는 바람에 정체성이 모호한 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좀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흥보다는 경박함이 더 앞선 느낌이었다. 한국무용에서 나타나는 고아한 느낌의 흥겨움보다는 일반 민중들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흥겨움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막춤은 그닥 공감이 가지 않았다. 안은미의 춤에서 보이는 막춤은 맥락상 타당하고 인생의 진리가 녹아난 느낌이지만 이날 공연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막춤은 앞부분에서 무용수들이 대걸레 자루를 들고 나와 고단한 삶을 표현한 뒤에 밀대로 무대의 꽃가루를 깨끗이 밀어내고 난 뒤의 춤이라고는 걸 감안해도 해방과 해탈의 춤이기라기보다는 고난에서 벗어나려는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만 보이는 바람에 깊이 공감을 할 수는 없었다.

공연의 전체 제목이 제목이 왜 <본>일까 궁금했으나 프로그램북 어디에도 이 공연 전체의 제목인 '본'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부의 '제'는 인간이 어떤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는 데에서 나온 것이고, 2부의 '흥'은 인간이 가진 정서 가운데 하나이니 이 둘은 모두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욕망의 하나라, 아마 거기서 제목의 의미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도 인간이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나 욕망의 소재로 얼마든지 변형, 재창작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 경기도극단의 레퍼토리에 올려놓을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무용의 좁은 틀을 벗어나 현대무용으로까지 지평을 넓히려는 경기도무용단의 변화에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춤을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는 사고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공연에 관객에 따라 좋은 평가와 그렇지 못한 평가가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결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시적인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한편으로는 전통을 지켜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도에 주저하지 않는, 그래서 정체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경기도무용단이 되어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공연을 올려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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