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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막내딸 아네모네   추천 1
작성자 박윤경 등록일 2021-05-04 조회수 669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극을 관람할 수 있어 기뻤다. 그것도 경기아트센터의 2021년 레퍼토리시즌의 하나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아네모네>를 관람하기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관련 뉴스를 보았다. 관객을 무대 위로 초청한 실험 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내용의 뉴스였다. 그래서였는지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2021년 3월 10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아트센터는 연극을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마치고 거리 두기 규칙에 따라 입장하였다. 사전 예고된 대로 객석이 아닌 무대 위로 향하였다. 길목마다 직원들이 서 있다가 입장하는 관객에게 인사를 해 주어 다행히 길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평소 입장하던 길이 아니기에 ‘이 특별함, 뭐지?’ 하는 설렘도 잠깐 일었다.

몇 자리 빈 채로 시작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좌석은 꽉 찼다. 좋은 연극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한 이들이 많음을 새삼 실감하였다. 이윽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불 꺼진 무대 뒤쪽에 앉아서 막이 어떻게 오르는지 지켜보는 두근거림은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이 연극이 왜 실험적인지 그제야 공감이 갔다.

불이 켜지자 배우들이 춤을 추며 몸을 풀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클럽에서 댄스파티가 한창인 모양이었다. 국적과 시대를 추정하기 힘든 의상을 입은 배우들을 눈으로 쫓다 보니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현란했지만 신선했다.

주인공 ‘아네모네’는 등장부터 자신이 신의 막내딸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짜로 신의 막내딸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스스로 신의 딸이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신의 딸 흉내를 내었다. 그녀가 베풀고 싶은 구원은 ‘도움’이었다. 가난한 이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비를 맞는 이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것 정도의 온정이었다.

그러나 아네모네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짊어진 비참한 운명 앞에서 그녀는 스러져 가는 꽃잎처럼 빛을 잃어 간다. 인간은 스스로뿐 아니라 타인도 구원할 수 없다는 명제를 무대 위에서 실현해 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신의 딸이라고 자청하며 살았어도 운명이라는 굴레는 벗어 버릴 수 없었다. ‘아, 이 연극 뭐지?’ 하는 여운이 내내 남았다.

등장인물 가운데 오매불망 ‘꽈리고추 짱’을 기다리는 한 남성이 있었다. 그가 기다리던 꽈리고추 짱이 누구인지 왜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어렴풋이 그가 평범한 대중에게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대스타일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꽈리고추 짱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 그것을 허상이라 해야 할까 소망이라 해야 할까.

무대 위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침묵을 요청하는 진지한 장면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그러는 사이 나도 절망과 희망의 외줄을 몇 번이나 번갈아 타며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무대 위의 객석’에서 요란한 꿈을 꾸다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깨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인생이듯, 연극이 끝나면 관객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다행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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