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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테인먼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유월>   추천 0
작성자 박형석 등록일 2021-03-01 조회수 431
지난 주의 <향화>에 이어 2주 연속 경기아트센터가 기획한 뮤지컬을 관람했다. 이날 관람한 <유월>은 제목이 시사하듯 1987년의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6월 항쟁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내용일 것이나 분명 우리 현대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사건임에는 분명하고, 그래서 경기아트센터가 젊은 세대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이용하여 교육과 오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에듀테인먼트로서의 기능을 하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기획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시의 현장 사진을 활용하여 포토월을 그럴 듯하게 입체적으로 꾸며 놓은 것에서 더 나나가 당시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젊은 관객들을 위해 로비 한쪽에 당시의 긴박했던 굵직한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놓은 6·10 민주항쟁 타임라인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아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운 것은 주도면밀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예술에서도 돈은 정직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작품이었다. 무대 세트라든지, 배우의 숫자라든지, 라이브 연주가 생략되었다든지 하는 것으로부터 이 작품에 투입된 예산이 <향화>에 비해 많이 적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의 공동제작가로 수키컴퍼니를 선택한 것은 적은 예산으로 <여명의 눈동자>의 놀라운 성공을 거둔 이력을 높이 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이라고 늘 적은 예산으로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6월항쟁 때에는 나도 거리로 나가 최루 가스를 맡아가며 종로와 서울역에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던 기억이 있어 과연 그 시대가 어떻게 뮤지컬로 표현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무대를 보니 업스테이지에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무대 여기저기에 네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으며 맨 뒤의 스크린에는 이 공연의 포스터가 투사되고 있었다. 이날은 두 자리 붙여앉고 두 자리를 띄는 바람에 나도 모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야 해서 좀 불편했다. 시스템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동행인은 붙어 앉더라도 혼자 오는 사람은 양 옆으로 띄어앉을 수 있도록 조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연적으로 군중신이 동반되는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무대화하는 작업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해당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살리지 못하면 많은 비난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지나치게 리얼리티에 치중하다 보면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뮤지컬 <광주>도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면서 화제를 불러 모았으나 세간의 평은 호불호가 갈렸고 내가 보기에도 썩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유월>은 배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 영상으로 처리했는데, 아마 이것도 어느 정도는 예산상의 문제일 듯하다. 뮤지컬은 시각적인 요소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유월>은 출발점부터 불리함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군중신에 등장하는 앙상블 배우들의 숫자도 적어 다수 민중들의 힘을 객석에 전달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레 미제라블> 정도의 인원이라면 가능하겠지만 10명 남짓한 인원을 가지고 시위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무대 후면의 웨건을 사용하여 무대를 깊게 한 뒤, 뒤쪽 웨건의 조명을 꺼서 어둡게 하고 배우들이 바로 그 앞에서, 그러니까 무대의 업스테이지 부근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연기하고 대신 군중들의 함성을 효과음으로 넣으면 후면 웨건에 거대한 군중들이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적은 인원으로도 그럴싸한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에 설치된 계단 세트를 트레블레이터에 실어 앙옆 백스테이지로 보내야 하는데, 백스테이지에 충분한 공간이 있는 경기아트센터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극본의 짜임새가 촘촘하지 않고 다소 헐겁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작품의 속도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었는데, 앞서 이야기한 에듀테인먼트적 효과를 기대한다면 지금보다는 속도감 있는 전개가 될 수 있도록 몇몇 에피소드들이 더 추가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중 대사에도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도철이 영화제에 적극적이지 않자, 풍요가 도철에게 그러면 너 이 동아리에 왜 들어왔느냐고 묻는 대목이 있는데, 도철은 처음부터 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이 없었으나 풍요의 강권과 졸업한 동아리 선배인 술집 주인의 부추김으로 인해 타의로 가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풍요의 그 질문은 좀 뜬금 없어 보였다.

풍요 역의 조풍연과 도철 역의 김도빈은 서울예술단 출신으로 2019년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 보았던 배우였고, A역의 김보현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난해 <광주>에서 보았으나 그밖의 나머지 배우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접한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괜찮았고 가창력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도빈 배우의 컨디션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던 반면 여주인공 유주연 역을 맡은 고은영 배우의 가창력은 두드러져 보여서 기억에 남는다.

음악의 경우에는 80년대 소위 운동권 가요들이 많이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됐지만 의외로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두 곡 밖에는 나오지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그나마 오프닝에 나온 <그날이 오면>은 가사만 같을 뿐, 완전히 새롭게 편곡된 곡이라 극의 마지막에 리프레이즈로 나오는 <그날이 오면>만 온전한 원곡이었으니 리프레이즈 포함 19곡 가운데 두 곡만 내가 아는 노래였다. 그러다 보니, 반드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소위 말하는 킬러 넘버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 관객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주지 못하고 녹음을 사용한 것도 객석의 분위기를 휘어잡지 못한 이유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커튼콜 때 스크린에 이한열의 장례식날 광화문에서 열린 노제(路祭) 당시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진이 투사되고 모든 배우들이 뒤로 돌아 손을 뻗어서 헌사를 보내는 장면에서는 뭉클했다. 당시 나도 현장에 가 있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었다. 주로 작품의 아쉬운 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그만큼 일회성 공연으로 지나가 버리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라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예산을 투입해서 부족한 부분들을 메운다면 충분히 감동과 교훈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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