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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팔타쿠스>를 압도한 김충한 표 <률>의 남성 군무   추천 0
작성자 박형석 등록일 2021-04-03 조회수 1086
경기도무용단의 <률> 공연을 첫날 관람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에 초연을 한 뒤 4개월만에 재연을 하는 무대인데, 고려시대 만적의 난에서 소재를 따왔으며 소위 '한국판 스팔타쿠스'라고 해서 관심을 끌었었다. 그래서 나도 이 작품을 보기 전,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팔타쿠스>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공연시간은 1막 60분, 2막 45분 해서 인터미션 포함 120분이 되는 비교적 규모가 큰 작품이었다. 프로시니엄 앞쪽에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 부분을 일부 내려서 그 아래에 조명을 설치해 조명을 입체적으로 활용했고 그로 인해 생긴 객석 앞부분의 돌출 무대는 극 중간중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일단 규모가 객석을 압도했다. 마치 비계와 같은 구조물을 무대 3면을 둘러싸게 만들어 설치해 놓고 중간중간 양쪽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만든 다리와 같은 구조물도 등장시켰는데, 이 구조물들을 다양한 용도로 바꿔가며 사용함으로써 무대의 단조로움을 극복했으며 극의 진행에 따라 턴테이블을 사용하여 무대에 입체적인 변화를 준 것도 매우 좋았다. 음악도 기본적으로는 녹음을 기본으로 삼기는 했으나 북 연주자들이 무대 업스테이 방향의 구조물 아랫쪽에서 직접 연주를 하기도 했고, 2막의 5장 일어서는 대지의 깃발에서는 무용수들이 직접 장구를 메고 나와 연주를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들려주어 지루함을 덜어주고 다채로운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음악이 처음부터 막을 내릴 때까지 시종일관 음량이 너무 컸다는 점이다. 교향곡을 연주하더라도 빠른 악장이 있는가 하면 느린 악장이 있고, 포르테시모가 있는가 하면 피아노시모도 있는 법인데, 그리고 그렇게 음악에 굴곡이 있어야만 강조될 부분이 돋보일 수 있는 법인데, 이 작품 속 음악은 거의 굴곡이 없이 최대 음량으로 뿜어내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듣는 것이 굉장히 피곤했다.


경기도무용단의 공연은 많이 관람하지 않아 아는 무용수가 없기 때문에 낯설었지만 또 반대로 선입견 없이 볼 수 있는 면도 있었다. 률 역의 정준용 무용수는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표현력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페라글래스를 가져가지 않아 자세한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몸의 움직임만으로는 상황에 잘 맞는 춤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랑 역의 이다인 무용수는 이날 출연한 주역 무용수 가운데 유일한 수석무용수였는데, 몸으로 그려내는 선이 곱게 보였고 특히 손동작이 만들어내는 선이 아름다웠다. 률의 정준용과 랑의 이다인 두 무용수가 만들어 내는 2인무의 호흡도 괜찮아 보였다. 휘 역의 원종우 무용수는 악역으로 도약을 비롯해 힘있는 동작들이 전체적으로 좋았으나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였다. 보통 선악이 나뉘는 작품에서는 악역의 카리스마가 선한 역의 주인공을 압도해야 드라마가 분명하게 살아나는데 이날 원종우의 카리스마는 정준용을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들에게 주는 해방감이 극대화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왕은 유일하게 선악이 불분명한 존재라서 무용수가 표현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나 오페라글래스의 부재로 인해 왕 역을 맡은 이용규 무용수의 표정은 잘 읽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경기도무용단원들의 군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무용극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군무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그런 이유로 인해 음악 소리도 시종 크게 울리도록 한 것 같았다. 앞서 이 작품이 '한국판 스팔타쿠스'를 표방하고 나왔다고 했는데, 이는 다분히 역사적 인물인 스팔타쿠스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발레 <스팔타쿠스>를 의식하고 내놓은 표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스팔타쿠스>나 김충한 감독이 연출한 <률>이나 모두 피지배층의 우두머리가 지배층에 항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인물의 영웅적인 투쟁과 장렬한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이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역동적인 남성 군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인데, 군무만을 본다면 <률>이 <스팔타쿠스>를 압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발레가 하늘을 지향하는 무용이라면 한국무용은 땅을 지향하는 무용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는데, 이 두 작품의 극명한 차이는 바로 이런 지향점의 차이인 것도 같다. 그리고 그 지향점의 차이가 군무에서 사실감의 차이를 낳은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두 주인공의 2인무에 있어서는 하늘을 지향하는 <스팔타쿠스>의 스팔타쿠스-프리지아의 파드되, 크랏수스-예기나의 파드되가 땅을 지향하는 률-랑의 2인무보다 훨씬 좋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용은 기본적으로 메시지를 언어가 아닌 몸으로 전달하는 예술임에도 왜 굳이 노인 역의 배우가 무대 뒤 업스테이지 쪽의 구조물 위로 올라가 큰 음악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 메시지를 언어로 전달하려는 시도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꼭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면 차라리 메시지를 전달하는 몸짓과 함께 무대 양 옆에 마련되어 있는 스크린을 통해 자막으로 전달했다면 메시지도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때 극의 서사적인 부분이 서정적인 부분을 압도한 느낌인데,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균형있게 배분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작품의 특성상 서사적인 측면이 더 강조된 극이라 어느 한쪽으로 무게의 추가 기울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이 작품에서는 그 격차가 다소 크다는 느낌이 든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대규모의, 스펙터클한 무대였다. 다음에 다시 공연된다면 음악의 음량 문제나 나레이션의 활용 문제는 꼭 재고되었으면 좋겠다.

이 작품을 보면서 최근의 미얀마 사태가 떠올랐었다. 작품 속의 휘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양민들을 탄압하는 모양새가 오늘날의 미얀마 군부의 모습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는데, 놀랍게도 막이 내린 뒤 암전 상태에서 주최 측이 막 위에 투영한 사진 자료가 바로 최근 미얀마의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항거하는 모습을 담은 것들이었다. 연출가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던 듯. 이 작품에서 휘의 서슬 퍼런 탄압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끝내 힘을 모아 부도덕한 휘의 세력을 몰아낸 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우리의 역사를 토대로 미얀마의 시민들도 끝내는 승리하여 군부에 빼앗긴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되찾을 것이라는 예지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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