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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연기, 무대가 조화를 아룬 수작 <파묻힌 아이>   추천 0
작성자 박형석 등록일 2021-05-30 조회수 620
작년에 예매했던 작품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두 번이나 취소되었다가 꼭 1년만에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향후 경기도극단의 레퍼터리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꼭 보려고 했던 공연이다. 내가 관람한 날이 첫공이었는데, 나처럼 생각한 관객들이 많았는지 공연 직전에 객석을 둘러보니 1층은 거의 빈자리가 없었고 2층도 사이드 블럭에만 빈자리가 보일 뿐 거의 만석이었다. 무대는 말 그대로 업스테이지 쪽은 높게, 다운스테이지 쪽은 낮게 만들어 객석에서 무대 전체가 잘 보이도록 경사지게 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작품은 <기아 계급의 저주>, <진짜 서부극>과 함께 소위 가족 3부작을 이루는 미국 극작가 샘 세퍼드의 대표작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파묻힌 아이>라는 제목보다는 <매장된 아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작품인데,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라 다소 은유적인 느낌이 드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한 것 같다. 미국 중부의 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생긴 가정의 붕괴를 그린 작품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손병호의 연기였다. TV에서만 보았지 무대에서는 처음인 손병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연기를 잘 했다. 극 초반 밭은 기침을 하는 것이나 술에 취한 모습 등이 실제 닷지인 것처럼 몸에 꼭 맞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갈라지고 쉰 듯한 목소리는 일품이었다. 예수정은 너무 연기를 잘 하는 배우고 이날 공연에서도 예수정의 연기에는 별 불만이 없었으나 과연 핼리 역에 예수정이 알맞은 배우인가 하는 의문은 공연 내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예수정은 지난해 극립극단에서 올린 <화전가>에서 맡았던 김씨 역이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되는데 죄의식이 없는 뻔뻔스러우면서 다소의 색기도 있는 핼리 역으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잘 몰입이 되지 않았다.

틸든 역의 윤재웅은 경기도극단 소속의 배우인데, 이 배우는 공연을 볼 때마다 계속 성장하는 느낌을 준다. 내가 경기도극단의 공연을 보기 시작한 것이 2017년인데, 윤재웅 배우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이 지난해부터이니 그동안에는 별로 눈에 띄는 배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날 윤재웅은 겉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하지만 내면 속 깊은 곳에는 늘 아들을 생각하며 그 아들을 매장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는, 그렇지만 독립하지 못하고 아버지 집에 빌붙어 지내며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인물을 잘 표현해 주었다. 브래들리 역의 정다운은 분장이며 행동, 음성이 정말 사이코틱한 느낌을 주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인물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폭발적인 연기가 좋았다. 빈스 역의 황성연은 지난해 재미있게 보았던 베토벤 음악극 <그래야만 한다>에 나왔던 배우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는데, 그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 놀라웠다. 처음 무대에 등장하던 중반부의 모습과 밤새 술을 마시고 돌아와 보여주는 폭력적인 모습의 대비가 커서 연기의 진폭이 큰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리 역의 정지영은 객원배우인데 이 작품 속의 유일한 정상적인 인물이다. 정상적인 인물이 비정상적이 가족들 틈에 끼어들어갔을 때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이나 이질감, 그리고 동정심과 관심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비교적 잘 소화해 주었다. 듀이스 목사 역의 한범희는 윤재웅과 더불어 경기도극단의 거의 모든 주요 공연에 바지지 않고 캐스팅되는 배우로 이번 공연에서도 성직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신도와 불륜 행각을 벌이는 비윤리적인 인물이면서 정작 신도의 어려움은 외면하는 무책임하고 비열한 인간을 잘 표현해 주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바탕이 되었고 배우들 사이의 앙상블도 좋아서 좋은 공연이 된 것 같다.

무대디자인이나 연출도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업스테이지 부분을 높게 만들어 객석 어디에서나 무대가 잘 보이도록 만들었고, 배우들의 동선이 잘 보이도록 디자인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배경이 되는 집의 벽을 격자 형식의 틀에 투명 아크릴로 막아놓은 형태에 상단은 일정하지 않게 만들다 만 것 같은 모습으로 디자인한 것이 좋았다. 격자 무늬는 마치 이 집안이 감옥과 같이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것을 보여주는 듯 했고, 마감이 되지 않은 듯, 삐쭉빼죽한 상단 처리는 이 가정의 정상적이지 못한 인물들의 심리를 상징해 주는 것 같았다. 또 벽을 투명하게 제작함으로써 집 뒤의 무성한 옥수수밭을 객석에서 볼 수 있도록 했으며 밖에서 내리는 비를 청각만이 아닌, 시각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비 오는 날의 분위기가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했다.

무겁고 상징적인 소재들이 많아 어려운 작품이었으나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조화로운 연출, 그리고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무대 구성이 어우러진 좋은 작품이었다. 아쉬운 점은 배우들의 연기에도 상징적인 동작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걸 몇 개 밖에는 짚어내지 못하고 작품을 관람한 것이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 번 더 관람하여 내가 이해하지 못한 미진한 부분을 채워보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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